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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봉황각을 아시나요? (손 윤 이사장 강연) 2018-07-18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강북 구 소재 사단법인 삼각산자연

 

문화보존연합회(이사장 김현풍) 회원들의 초대로 우이동 봉황각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강연을 하였다.  

 

 

봉황각을 아시나요?

 

(2018.7.11.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손 윤)

 

1. 유래

 

봉황은 수운(최제우)의 시에 자주 나오는 낱말..

cf 참새 & 봉황

 

손병희선생은 1910년 6월 화계사 삼성암에서 21일 연성, 이강공(의친왕)과 두견정(봉황각 건너편)에서 활쏘기와 국권회복을 위한 밀담을 나눠, 1911년 11월 이봉천 소유 별장에서 1개월을 보내....왜 그랬을까?

 

1912년이후 28,213평을 사들여..3월부터 봉황각을 지어 6월 19일 준공식, 이듬해 60여 칸짜리 부속건물을 지어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양성

 

겨레의 삼각산, 백운봉 망경봉 인수봉, 도선사, 봉황각 이름만 들어도 로망이 생기고 꿈을 키울수있는 민족의 도량..

 

칠언절구,‘삼각산, 천도 무궁하여 갔다가 돌아오나니, 봉황대라’

오언율시,‘올 해엔 우이동이지만, 먼 옛날엔 두견정 일세’

 

2. 출신지역별 현황

- 1912.6.22일 제1회 21명 졸업(도선사에서 공부), 박준승(임실), 라인협(성천), 임예환(중화),홍기조(용강) 4명이 33인

 

- 1914년까지 7회차(2회에 봉황각 23명, 도선사 49명) 졸업생 483명이 270여 지방교구(2/3는 북한지역)로 돌아가 독립자금 모집, 독립선언서 배포, 지역별 독립만세시위 주도

 

- 평북 158명, 평남 96명, 함남 55명 등 64%(3분지2)이상이 북한 지역에서 차출된 천도교 지도자들(교구장, 연원주, 교구임원, 기타 순)

 

3. 남북통일을 위한 봉황각의 역사성

- 평화통일은 3.1정신에 근거

 

- 1919.2.22,“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하고 천도교 간부에게 밝혀

 

- 1926.4.6, 천도교 청년당(차상찬), 한식을 맞이하여 우이동에 춘기원족을 감, 당원의 한 사람으로 손의암선생의 유곽과 유택을 배성할려고(1926.5.1, 〈개벽〉 제69호)

 

- 1968년 9월 1일 수운회관 건축에 따라 ‘중앙총부본관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 종학원으로 사용

 

- 1945.11.28. 김구 참배, “우리 민족의 영웅 의암선생 묘소에 성묘하는 뜻이 천도교에 헌신하신데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민족의 투사인 선생의 영혼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근원의 물을 우리들이 마시고 이 강산을 지키지 못하고 환국한 오늘”복 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하여 목이 메어 말을 끊고는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 무엇 때문에 우리끼리 죽이느냐 살리느냐 합니까? 아직도 우리 머리 위에는 외국의 덩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합니다”

 

- 1945.12.4, 최동오(광복군 부주석, 화성의숙 숙장, 김일성의 스승), 홍진(광복군 부주석) 등이 손병희 묘소를 참배

 

- 1956.3.1, 이승만 참배

 

- 3.1혁명의 요람, 원형대로 복원․보존해야

 

4. 민족․민주의 성지 : 삼각산, 봉황각

 

- 3.1운동의 발상지, 교육보국의 도량으로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지역 주민들의 몫

 

- 손병희, 여운형, 김창숙, 이시영, 유림, 이준, 무후 광복군묘

 

- 4.18혁명 묘지 등의 공존 의미

 

5. 삼각산 모임이 나아갈 길

 

- 삼각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우리 민족의 역사, 문화유산을 지키고 선양해야

 

- 국립현충원과 국립순례길로 만들어 교육의 장, 역사의 장, 문화의 장으로 자리매김, 위대한 독립선열들을 모셔야 미래가 보일터..

 

 

궁금한 사항(Q&A)

 

① 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100주년’기념사업이라 하는지

- 헌법(1919.4.11.대한민국 임시헌장= 1919.6.10.자 대한공화국임시헌법→7.22.자 임시헌장), 역사성, 3.1절 의미, 광복절과 정부수립

- 4.11은 임정수립일, 1948.8.15.은 대한민국 재건 정부 수립일

 

② 건국기원절과 건국일

- 조선건국4252년, ‘3월1일은 건국일’3.1절에 내포됨

 

③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광복후 대한민국

-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공동가치 : 3.1독립만세+항일독립운동의 역사

 

④ 남북통일의 의미

- 3.1운동과 임정시절의 임시헌장으로 돌아가야 = 3.1정신

- 평화 : 비폭력/공존 : 같은 역사/공영 : 한 민족

 

⑤ 왜 민족개념,역사가 중요한가

- 일제의 식민사관+사대주의+중국 동북공정이 반도국가로 축소

- 남북공유 : 상고사(환인, 배달), 고조선사(단군), 동학혁명사, 3.1운동사, 항일독립전쟁사

- 동학의 역사인식 : BC1285~194년의 고조선 때 신라(경주) 천년의 자부심(용담가)..한민족의 적통맥(유불선기 초월)

 

⑥ 대한민국 국호 유래(공화국=Republic)

- 1919년 3월 21자 신한민보, 대한공화국림시정부(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Korean Republic), 대통령 손병희선생, 각하만세,

 

- 임시정부를 빼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 대한공화국 = 한성정부로 이용(1919.6.14.부터 대통령 자임)

 

- 1919.4.5.자 신한민보, 대한독립선언서, 대한국림시정부 내각이 조직되어 대통령 손병희, 국무경 이승만 ⇔ 개작(改作) 임시대통령(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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