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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절은 건국절(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2018-04-12

 

 

3.1절은 제1회 독립선언기념식으로 건국절이고, 10월 3일은 건국기원절로 국경일임을 선포함
(1920.3.1. 대한민국임시정부)

3·1절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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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 이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새로운 국가인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며, 이를 운영하는 ‘임시정부(현재 행정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시정부의 수립은 대한제국시기 의병(義兵)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노력과 경험을 바탕이 되었고 3·1운동을 직접적 계기로 수립될 수 있었다.
  임시정부에서는 수립 이후 국경일(國慶日)을 제정하는 법을 준비하면서 ‘독립선언일’일인 3·1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처음 국경일 제정을 논의한 것은 1919년 12월 1일 열린 국무회의였다. 회의에서는 국경일과 그 명칭을 정하는 법안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1920년 제7회 임시의정원회의(1920. 2. 23~ 3. 30)에서 ‘국경일 결정에 관한 의안’을 논의하였고 그 결과 3·1절과 건국기원절(현재 개천절)이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임시정부는 3·1절을 국경일로 제정하면서 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준비하였다. 1920년 2월 2일 내무총장 이동녕(李東寧)은 ‘내무부 포고 제1호’를 발표하고 같은 달 2월 21일 대통령 이승만은 대통령령(大統領令)인 교령(敎令)을 발표하여 3·1절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추진하고 민족 전체가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림 1. 3·1 독립선언 1주년 기념식(1920.3.1)
3·1 독립선언 1주년 기념식은 오전 10시 국무원과 의정원의 축하식, 오후 2시 민단이 주최한 대축하식 등 두 차례에 걸쳐 열렸다. 축하식은 이동휘 국무총리, 손정도 의정원 의장과 학생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대축하식은 국무총리와 의정원 의장을 비롯한 임시정부 관계자들 외에도 외국인 100여 명 등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림픽 극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대축하식에서 상하이에 독립선언서를 처음 가져온 현순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노백린이 비행사양성소 설립을 결정한 것은 미주한인들의 준비된 역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시 오림하, 이용선, 이초, 한장호, 이용근, 장병훈 등이 레드우드 비행학교에 재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백린은 직접 이들을 만나 비행사양성소 창설과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임시정부는 3·1절 1주년 기념식을 상해 올림픽대극장에서 거행하였다.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 상해 정안사로(靜安寺路)에 위치한 올림픽대극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은 임시정부 각료(閣僚)들과 한인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기념식장 내에는 독립선언을 경축하는 현수막을 비롯하여 태극기와 일장기를 제외한 만국기를 걸었고 식단 앞 좌측에 군악대를 배치하였다. 
  사회를 맡은 여운형(呂運亨)의 개회 선포 이후 애국가를 합창하고 미리 준비된 태극기를 단상에 게양하였으며 참석자 모두가 국기를 향해 경례하였다. 여운형의 기념식사가 있었고 현순(玄楯)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李東輝)·내무총장 이동녕· 노동국총판 안창호·중국 대표 이인걸(李人傑)이 차례로 축사를 하였다. 축사가 끝난 뒤에는 독립군가의 합창이 있었다. 사회자의 선창 후 참석자 모두가 ‘대한민국 독립만세’ 삼창을 하고 4시 30분경 폐회가 선언되었으며 각종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기념식이 끝나고 한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남경로(南京路)와 황포탄(黃浦灘) 등지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또한, 당일 상해 곳곳의 한인 상점에는 모두 태극기를 걸어 3·1절을 기념하고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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