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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5회 손병희 글짓기 공모전 특별상 수상작 2017-12-19

제5회 손병희 글짓기 공모전 수상작

 

​특 별 상

(동학민족통일회 의장상)

 

​박 재 원

 

의암 손병희 선생의 정신과 대한민국, 그리고 나의 삶 

 

 

   나는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자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 있는 역사책을 워낙 많이 읽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역사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지금,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에 일종의 오만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거의 대부분의 한국사를 꿰뚫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오만함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내 오만함은 우연한 기회로 의암 손병희 선생님을 알게 된 후 깨지기 시작했다. 3.1운동과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은 책에서 재미로 훑고 지나가거나, 시험 문제를 맞추기 위해 그저 달달 외우기만 했지 어떤 분의 희생과 노력으로 3.1운동이 이뤄진 것인지는 그 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다. 의암 손병희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얼핏 이름만 흘려 들었을 뿐 손병희 선생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솔직히 나는 알지 못했다.

 

  손병희 선생에 대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룩하신 업적에 대한 글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 역사 강사의 손병희 선생과 민족 대표에 대한 발언 역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룸싸롱 격인 태화관에서 손병희 선생과 민족대표 33인이 대낮부터 술을 퍼마셨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자료를 찾아보니 그 말은 강사 개인의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민족 대표 33인은 비겁하게 대중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 33인은 자신들이 세운 투쟁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비폭력 시위를 지키기 위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외친 것이다. 만일 손병희 선생과 민족 대표 33인이 이 강사의 주장대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발을 뺀 것이라면, 독립선언서 낭독 이후 수 년간 징역형을 받은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순간 일본군에게 붙잡힐 거라는건 자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어 전달된 것일 수도 있고, 정작 겨레와 민족을 위해 애쓴 의암 선생같은 위인들은 잘 알려지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암 선생의 행적을 알게 된 뒤, 그간의 내 오만함은 부끄러움의 감정으로 변하여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잔혹한 일제의 탄압 아래서 제 한 몸 건사하기 급급한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 민족과 겨레를 위해 생명의 불꽃을 태우는 행동이 어찌 쉬울 수 있으랴. 국제 정세를 긴밀하게 파악하여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일. 최린과 최남선 등을 설득한 인품,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 매국노 이완용까지 포용하는 넓은 마음, 3.1운동을 주도하고 민족대표 33인을 결성한 결단력. 그 모두가 민족 대표 33, 의암 손병희 짤막하게 한 줄로 적혀있는 교과서 너머에서 숨 쉬고 있었다. 악귀같은 일제와 그들의 앞잡이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조선인들에게 의암 선생은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자료로 나온 손병희 전기를 요약하자면 의암 선생님께선 국내 및 일본에서 발간되는 신문을 꾸준히 구독하며 시국의 변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이유는 바로 일제에게 강제 점령된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오세창, 권동진 등과 함께 독립 달성 방안을 여러 차례 논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한 독립 달성 방안은 실현불가능하거나 실현되더라도 효과가 없었다. 따라서 의암 선생은 연성기도회를 열어 차츰차츰 독립운동의 기틀을 세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19년 권동진, 오세창, 최린은 의암 선생을 찾아가 독립 운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때 의암 선생께서 제시하신 선언문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1) 평화적이고 온건하여 감정에 흐르지 말 것.

2) 동양의 평화를 위해 조선의 독립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것.

3) 민족 자결에 의한 자주 독립과 전통 정신에 입각한 정의와 인도의 운 동임을 강조할 것.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면서도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그 골자이다.

      

  한편 고종 황제가 붕어하시고 일본군의 독살설이 퍼지자 민중들 사이에서 반일 감정이 타오르기 시작하여 독립운동이 더 구체화 되었다. 하지만 독립 운동의 핵심 일원인 기독교 세력이 분열될 위기에 처하였다. 왜냐하면 독립 운동 궐기 시 주동자들이 구속될 것이 분명한 데, 그 가족들의 생활비가 없다는 기독교 측의 고민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난처한 상황 속에서 의암 선생은 재정 상 어려움이 있음에도 주저 없이 기독교 측에 자금을 조달함으로서 분열 막기도 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3.1운동이 가까워졌고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주장하는 의암의 뜻이 선언문에 담겼다.

 

  의암 선생께서 하신 말씀 중에 유명한 한 구절이 있다.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건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라는 구절이다.

  이 3.1 운동이 성공을 하거나 즉각적인 영향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겨레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렇듯 의암 선생께서는 제국주의와 폭력의 기치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기를 바라셨다. 즉 대한민국이 불의와 폭력의 세계에서도 평화의 국가, 평화의 민족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라 마지 않으셨던 것이다.

  이는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세계는 꼭 100년 전 의암 선생의 시대와 유사하다. 한 마디로 격동의 시대이다. 이웃 일본은 헌법을 개정하여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중국은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을 서슴치 않으며 군사 대국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북에 자리 잡은 괴뢰 정권 북한은 김정은의 통치 하에서 핵 개발에 여념이 없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 이라는 무시무시한 발언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내뱉는다. 이와 같은 시류에 편성하여 대한민국도 핵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지속적으로 주변국에게 적대적인 시각을 견지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동아시아를 무대로 한 세계 3차 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의암 선생이 가지셨던 평화의 마음, 그것이 바로 핵심이다. 우리가 먼저 평화를 간절히 원하고 주변 이웃들에게 신뢰를 보이며, 행동으로 보여질 때 일본과 중국, 북한 또한 한국의 진심을 알고 상호 협력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다만 언제든지 적이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군사력과 안보가 뒷받침 된다는 전제 하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한다.

 

  통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은 단순히 군사 분계선이 허물어진 것이 아니다. 남한과 북한 주민이 서로를 존중하고 상호협력하여 평화적으로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다. 이는 의암 선생이 주창하셨던 3.1운동의 정신과 다르지 않다. 평화적이면서도 윤리적으로 합당해야 할 것. 의암 선생의 3.1운동 정신이다. 북한 주민들은 우리 대한민국과 똑같은 뿌리에서 나온 하나의 겨레이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생활이 곤궁하다고 해서 그들을 멸시해서는 진정한 통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의암 선생은 내 롤모델에 가깝다. 나는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 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의암 선생 역시 언제나 자신을 단련, 계발에 힘쓰고 타인과 조선 독립을 위해 힘썼기 때문에 이상적인 ``와 다르지 않다.

   사실 2년 전 군 입대 당시에 난 하루하루 후회 없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이등병 시절 초소 경계 근무를 서고 밤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부끄럼 없이 삶을 살았는가라고 혼자 되묻곤 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았는지, 힘든 군 생활 속에서도 교훈을 얻었는지, 독서와 운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계발하는지 등등.. 아무 생각 없이 살지 말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내 자신을 단련하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내가 되자고 말이다.

  그 순수한 정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져만 가고 지금은 초라한 마음만이 남아있다.

      

  글을 마치는 지금 불현 듯 어디선가 의암 선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너는 지금 간절히 하루하루를 살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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