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손병희 글짓기 공모전 수상작
대 상
초등학교 3학년
손 하 랑
주제 : 범상치 않은 출생 - 서자의 한을 읽고.
제목 : 나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밀양 손씨이다! (산문)
손병희 선생님의 태몽은 붉게 타오르는 태양과 일곱 색깔의 무지개였다고 하는데 나의 태몽은 큰 밤이었다고 한다. 엄마가 일을 하시는 곳에 누군가가 찾아와서 큰 밤송이를 주었다고 하셨다. 밤송이를 받고 그 안에 밤을 보는데 밤이 엄청 크고 윤기가 흘러서 엄마는 밤을 보며 “어떻게 밤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 이렇게 예쁘고 큰 밤은 처음이야!”라고 외치시다가 꿈에서 깨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에 내가 생겼다고 하셨다. 엄마는 태몽 때부터 내가 나중에 자라면 큰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종종 나에게 말씀하시곤 하신다. 나는 아직 내가 큰사람이 될지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시골 할머니께서는 내가 시골에 갈 때마다 마을 경로당이든, 시장이든 늘 내 자랑을 하신다. “야가 그렇게 공부를 잘해.” “야가 이번에 또 상을 받았는데 도대체 상이 몇 개인지 하도 많이 받아서 셀 수가 없어.” 하시며 만나는 사람마다 내 자랑을 마음껏 하신다. 그때마다 내 얼굴은 할머니 댁 감나무에 홍시처럼 붉어지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엄청 좋다.
엄마는 가끔 내가 어렸을 때, 아빠 엄마가 직업을 바꾸시면서 집이 많이 어려웠던 적이 자주 있었다고 하셨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시지만 그때는 참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다고 하신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손병희 선생님 어린 시절 글을 읽으면서 어려운 단어에 설명해 달라고 하기 바쁜 나와는 달리, 내내 고개를 끄덕이시며 공감을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손병희 선생님 18세 때. 집에 먹을 것이 떨어져 쌀장사에게 말을 했던 구절. “이왕 내가 굶어죽을 놈이 너를 살리고 나만 죽을 수는 없는 노릇, 너부터 죽이고 우리 제 식구가 모두 굶어 죽을란다.”하는 그 구절이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았고 지금도 자꾸 떠오른다. 왜냐고 물으면 왜 그런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린나이의 손병희 선생님의 그 자신감이라고 해야 될까? 그런 부분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교육을 강조하신 부분도 참 감사하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어 내가 이렇게 자유를 누리는 것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다 손병희 선생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빠 엄마가 일하시는 전주 한옥마을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있다. 바로 동학혁명기념관이라는 곳인데, 처음엔 부모님이 일하시는 곳 바로 옆쪽에 있어서 호기심에 들렸었다. 그러다 조금 더 관심 있게 둘러보게 되었고, 동학혁명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그 중! 나의 발길을 붙잡는 곳,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바로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나는 자신이 없는 일 앞에서는 조금만 어려워도 쉽게 포기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룰 때가 많았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손병희 선생님 동상 앞에 설 때면 부끄럽고 한없이 작아졌다. 자꾸 작아지는 내 자신이 싫어서 나약한 마음이 들 때마다 손병희 선생님 동상 앞에 간다. 그리고 다시 다짐을 한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자고.
학교에서는 내가 흔치않은 성이어서 그런지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친구들은 내 이름을 가지고 손바닥, 손가락 등 내게 자주 이름으로 장난을 쳤다. 난 그때마다 손씨인 것이 싫었었다. 그렇지만 손병희 선생님을 알고부터 나는 내가 밀양 손씨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보면 그냥 서있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심장이 꼭 100m 달리기를 할 때처럼 마구 뛴다. ‘나의 조상 중에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계시다니... 나도 커서 꼭 손병희 선생님처럼 자랑스럽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 글을 적으면서 오늘도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