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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5회 손병희 글짓기 공모전 금상 수상작 2017-12-19

 

제5회 손병희 글짓기 공모전 수상작

 

​금 상

 

​유 정 인

 

  

현대인의 가슴을 울리는

의암 손병희의 세 가지 메시지

 

  

저명한 역사학자 E.H.Carr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 하였다. 그만큼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과거 유사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보고, 그 시사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일 테다. 현재 한반도는 남한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복잡한 국제관계에서 살아남을 방책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의암 손병희의 생애와 철학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일화들은 국내의 사회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지도 알려준다.

 

첫 번째 메시지 : 세계정세를 꿰뚫는 국가전략을 제시했던 의암 손병희

 

최근 매스컴을 통해 자주 언급되는 역사적 인물로 광해군이 있다. 폭군의 이미지를 벗어나 시대를 앞선 왕으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중립외교 정책이 그 시기의 국제 상황을 잘 꿰뚫고 있으면서도, 그 시대의 관념을 깬 파격적인 정책으로 재평가되어서다. 만약 그의 정책이 제대로 실행됐더라면, 조선의 역사, 더 나아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달라졌으리라는 평이 많다.

 

그러나 광해군이 재평가되고 있다면, 의암 손병희 역시 재조명돼야 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국제적 감각과 그가 제시한 방안은 몇 가지 측면에서 광해군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두 강대국의 전력(戰力)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광해군은 명나라가 지는 해와 같이 쇠락하는 세력, 후금이 급부상하고 있는 세력임을 읽어냈다. 의암 역시 한국에 주둔한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인다면 전쟁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가진 것은 일본이며, 지리적군사적 여건 역시 일본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정확히 간파했다.

 

둘째, 다른 나라에 편승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국권을 행사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다. 광해군은 중립외교라는 말에서 그 성격을 엿볼 수 있듯, 명과 후금 어느 쪽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의암은 외교 무대에서 국권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중요시했다. 그가 전승국의 지위를 갖고자 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셋째, 사대주의나 친밀도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한반도에 유리한 전략을 제시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의 전투에서 명의 지시에 따르는 시늉만 한 후, 실질적으로는 후금과 우호적으로 가도록 명령했다. 의암은 전승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일본과의 협력을 주장했다. 이러한 방식은 그 당시 주류를 이뤘던 세력 - 광해군은 친명배금주의를 주장하던 세력, 의암은 친러파 - 과 충돌했다는 면까지 유사하다.

 

의암이 일본에 협력하려 했다는 점만 보고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여론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광해군이 현재 재평가되고 있다면, 의암에 대한 생각들 역시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에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객관적인 상황 분석을 토대로 나온 결론이었고, 결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의암의 눈앞에서 친일파라 비난하며 목숨을 위협하던 자객도 그의 논리에 고개를 숙였겠는가.

 

또한, 우리는 의암과 광해군의 사례를 통해 두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첫째, 외교무대에서는 국가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갖고 있는 주체로서 당당하게 입장을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다른 국가와의 교류는 동등한 눈높이에서 유불리 여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지, 극단적으로 숙이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사점은 현재 북한과 미국 사이의 한국에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 종북과 친미라 비난하며 양 극단으로 갈라져서 싸울 것이 아니라, 남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남한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북미 사이에서 어떠한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메시지 : 다른 종교와 협력할 줄 알았던 의암 손병희

 

근래에 와서야, 한 종교 지도자가 다른 종교의 의미 있는 날 - 예컨대, 부처님 오신 날이나 성탄절 - 에 그 종교에 덕담하며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만큼 다른 종교는 우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고, 서로 충돌하는 교리도 있기 때문에, 교류하는 것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그러한 분위기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을 그 시대에, 의암은 기독교 단체의 금전 지원 요구를 선뜻 들어준다. 친한 사이에도 보증을 서거나 돈을 주는 일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교리가 달라 교도들의 반대 의견도 있을 법한 타 종교 단체에 선뜻 예금의 일부를 건넨 것이다. 이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종교 간의 다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종교의 진짜 존재 이유다. 비록 교리와 숭배하는 대상은 다 다르지만, 종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평화이고, 국가 체제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종교단체에서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이유는 정치체제 하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비공식적인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함으로써 평온한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의암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이유는 이러한 종교의 지향점을 너무나 잘 알고, 조선의 독립은 그에 부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과도 협력할 줄 아는 태도이다. 조선시대의 정조는 탕평책으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며 국가를 운영해 나갔다. 독립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의암이 보여줬던 모습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의 말처럼, 입장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자신의 대열에 동참하게 하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까지 동의할 만큼 정당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사적인 감정의 개입이 없었다는 공명정대함의 이미지가 생기기 때문에 신뢰감도 높일 수 있으며, ‘집단지성이나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듯, 같은 목표를 가진 여러 사람이 이를 꼭 달성하리라는 의지를 가지고 모이면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의암은 협력의 장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세 번째 메시지 :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운 의암 손병희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동학농민운동이 지향점이었던 반봉건은 그 시대의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세계 여러 민족운동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 아무리 지배자의 폭정에 지쳤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군림하던 자를 몰아낸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운동이 현재의 역사교과서에서까지 지배자의 압제에 적극적으로 맞선 운동으로 기록돼 있는 것은 의암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의암은 서자로서 받는 차별을 참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 심지어 공격적으로 보일 만큼 - 표시하여 상대방의 행동을 바꿔놓는다. 이러한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차별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동학의 지도자로서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어 갈 수 있었으리라 본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의암의 생애

 

의암의 생애는 현실의 여러 문제에 대해 해결 방향을 제시해 준다. 북한이 걸려 있는 국제 관계, 종교 갈등, 일상 속 협력이 필요한 일들, 성적 소수자나 비정규직 등 소외계층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현재 상황들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암은 우리에게 먼지가 뽀얗게 덮인 채 창고 속에 숨어 있는 거울과 같았다. 많은 것을 그를 통해 보고 배울 수 있는데도, 많은 이들이 그를 알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창고 속에서 거울을 꺼내 먼지를 닦아내고 반짝반짝하게 만들듯, 의암의 자서전 출간도 그가 현대사회의 거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제5회 손병희 글짓기 공모전 은상 수상작
  제5회 손병희 글짓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