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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혁명과 대한민국 (미사협 역사콘서트 1회, 서울편) 2016-10-27

3․1혁명과 대한민국

Ⅰ. 일본 안의 식민사관

1. 일본에서 찾기 어려운 임나일본부

가. 일본의 바른 지식인들은 왜(倭)의 존재가 일본의 남부, 즉 한반도 밖에 있었다고 하고, 한국이 삼국시대에 불교를 전수해 주는 등 일본왕조 및 일본인의 모국으로 옛 조선을 인식하고 있으며, 삼국을 통일한 고려시대 이후에도 조선이 일본 역사에 끼친 영향은 크다고 생각하고 있음

⇒ 서기 4~5세기 전후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일본에 조선의 문화(유교 및 불교문물 등) 전파하였고, 이를 기초로 나라(奈良)에 야마토(大和)정권이 최초의 일본 국가를 세움

⇒ 고려문(高麗門)*이 교토 정토종 대본산 금계광명사의 현판으로 2015년까지 사용되고 있었으며, 신라 원효에게 정토사상을 전수한 지은원의 호넨(법연스님) 및 신란(親鸞스님, 동원본사)을 일본 정토종 최고의 고승으로 신처럼 모심

* 교토 관립 제일중학교와 인접한 곳에 금계광명사의 현판을 고려문으로 중수한 기념식수 비문이 있으며, 교토 제일중학교(당시 중고과정)는 1901년부터 1906년 초까지 손병희선생이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이광수 등 64명의 조선의 인재를 뽑아서 동학(천도교)의 자금으로 유학시키는 등 장차 1919년 2․8동경학생 독립선언과 3․1선언 등 빼앗긴 조국의 독립운동 리더들을 양성했던 학교로 손병희 선생과 유학생들의 숙소와 사찰이 어우러져 있음

⇒ 동경의 현 일본천황 관저의 외측문인 櫻田門(사쿠라다문)도 고려문(korai)으로 명명하여 게시판에 설명하고 있는 등, 조선은 일본의 선조 또는 형제국이었다는 역사를 일본이 자랑하는 유물들이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음

나. 일제(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등)로부터 100년 이상 역사를 세탁, 세뇌 당한 대한국민의 사대주의 사관의 실체는 일본은 물론, 중국의 동북공정 전략, 서양과 미국 등 강대국의 입장을 사대하는 등 오천년 조선역사의 자주적 사관을 잃어버림

⇒ 노예 식민사관, 망국적 사대주의, 매국의 자학사관

다. 광개토대왕비문을 조작(일본 관동군)하여 단군을 신화로 격하하고, 삼국시대(고구려)와 고려시대의 충주(국원경, 중원경) 소재 칠금동 철광산의 강한철로 만든 칠지도를 당시 제후국인 일본인에 하사한 조선의 검을 마치 일본이 만든 것처럼 국보라고 자랑하는 등 일본인의 조선숭배 역사관을 거꾸로 왜곡하였으며, 일본이 조선에 비해 2천년 이상 부족한 고대역사(BC)를 메우기 위해, 단군조선의 살아있는 역사를 신화로 조작한 일본서기(AD720~) 등의 결과물 ⇔ 임나일본부설

⇨ 일본의 콤프렉스 - 역사와 문화면에서 앞선 조선에 반감

2. 우리안의 식민사관

가. 일본에도 실체가 없는 ‘임나일본부설’ 을 우리가 만들어 주고(친일, 매국), 이를 긍정적으로 저술한 친일사학자의 저열한 역사관과 거짓 내용을 비판한 민족 역사학자의 인식이 유죄가 되는 사법부가 대한민국의 정의

⇒ 매국․식민사관을 비판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이기 전에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 외에도 상을 받을 반한 애국적인 일이며, 형사 재판의 대상이 될 수가 없음

⇒ 서부지법의 각하 등 취소판결을 기대하지만, 이는 역사학계 최대관심사, 11월 3일은 역사학자 이덕일 재판 선고일(2심)

⇨ ‘식민사학 해체의 날’, ‘역사광복의 날’

나. 귀무덤(耳塚)과 코무덤(鼻塚)을 아시나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침략의 원흉이자 조선인의 철천지 원수인 풍신수길이 7년 전쟁에서 유린한 민간인을 포함한 우리조상의 목대신 귀와 코를 일본으로 실어와 두 번 죽여서 교토 중심가에 묻어놓고 조선인의 살육을 자랑하는 일본인의 간악한 이중적인 행태에 분노

⇒ 교토 중심가 대로변 한쪽 주택가와 붙어 어린이 놀이터 가에 방치한 일본 정부는 물론, 국가차원의 추모시설 한 평도 조성하지 않고 있는 역대 한국정부의 무관심이 큰 문제

⇒ 임진왜란에서 패한 풍신수길의 후예들이 명치 후 조선침략에도 반성하지 않고, 한국정복론을 다시 부추기는 귀무덤 앞의 ‘풍국신사’의 위용에 경악

⇨ 미완의 조선침약의 야욕, 대한민국을 다시 정복해 보려는 아베 총리를 비롯한 군국주의자(풍신수길과 정한론의 후예)들은 자민련 독재권력과 경제력 등 힘을 이용하여 우리 조상들의 혼과 한국인의 얼을 농락하고 있는 현실

⇒ 귀무덤에서 분노하는 나와 나의 조국이 더 부끄러웠던 자아일탈의 시간 ⇔ 우리 안의 식민사관

⇨ 일본에 추모공원의 조성 권고 또는 국내(현충원)로 모셔서 국가차원에서 선열들을 추모해야

Ⅱ. 2․8 선언, 어떻게 가능했을까?

1. 준비된 조선청년독립단 (1906년 YMCA)

가. 손병희 선생, 동경(항구마포아선방정 24번지)에 충청도 갑부 이상헌(가명)의 비밀거점(1904년 8월~1906년 1월, 동학의 대도주 손병희 일본 체류)을 중심으로 비밀 학생 조선독립단을 구성하고, 귀국(2006년 1월)하여 천도교 중심 독립운동 준비

나. 1902년부터 국내유학생을 모집하여 일본의 교토 제일중학교(조선의 최고 인재 64명 차출 유학), 와세다대, 명치대, 동지사대, 동양대 등 재일유학생들이 자주적으로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 가도록 인적, 물적 지원을 비밀리 지휘

2. 1919년 2월의 재일유학생 수준보다 저열한 강단 식민사학자들에 다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해야

가. “조선은 항상 오족의 조선이오. 일차(一次)도 통일한 국가를 실(失)하고 이족의 실질적 지배를 수(受)한 사(事) 무(無)하도다.” (4,3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유한 역사)

⇔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조선건국 4252년 3월 1일)

⇨ 조선은 2․8선언서와 3․1선언서로 조선건국 4252년 간 독립국임을 선언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대한민국 건국과정)

3. 재일 역사학자 강덕상 교수의 연구 및 증언록, “1918년, 북경, 조선에서의 독립운동 준비사항이 일본에 전해 졌다.”

⇒ 일본에서 숨 쉬는 것조차 일본 경시청의 허락을 맡아야 했던...엄혹한 시대의 동경 YMCA 강당에서 독립을 선언

⇒ 주동자 이광수가 독립선언서를 일본어, 영어로 번역하여 서울, 상해, 불라디보스톡 등 연락취해 그 날(2.8)을 위해 준비하고 상해로 망명, 4.11. 상해임시정부 수립 기초

⇨ 손병희 선생 지휘하 조선독립단의 기획과 준비, 지시

4. 일본 제국주의는 진행 중

강덕상 교수의 한국정복론(정한론),

“청일, 러일전쟁은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싸운 전쟁”

⇨ 4349년...3․1혁명이 필요..미사협은 하늘의 뜻(天의明命)


 
  임시총회 개최
  3.1혁명과 대한민국 (2편, 계속)